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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섭의 詩 文學
靑天日記 이만섭 푸른 날개의 새가 공중을 날고 있다. 새는 오래된 꿈을 펼쳐보기라도 하듯하늘 아득한 데까지 날아갔다가 돌아오기도 하는데오늘은 가을날이 띄워 올린 비행선처럼 산하를 굽어보는 단색조의 날갯짓이 명징하다. 새에게도 우리가 모르는 서정이 깃들어 있어일기가 사나우면 호숫가의 갈대처럼 물낯에 어린 표정 거두어들이고 시간이 지나가길 기다리는 것인데 그런 저녁은 텅 빈 공중을 어둠에 건네주고하늘 가장자리에 들어앉은 흰빛 정자로 총총히 돌아가는 것을 볼 수 있지만 새날에 이르러어느 사이 공중을 훨훨 독차지하고 있다. 나는 가끔 저 푸른 날개가다른 무리의 새 떼들을 몰고 가는 광경을 본다. 어미 곁에 파닥거리는 유조의 날갯짓처럼창공은 새 떼들의 또 다른 안식처..
모래꽃 이만섭 백사장을 건너간 발자국들 꿈의 허물처럼 쌓인 어지러운 자취는 간밤에 무슨 꿈을 꾸었는지조차 알 길 없는데 모래는 오직 밟히기 위해 존재한다는 생각이 지나갔다. 저토록 붐비어 닳고 닳은 몸뚱어리에 비바람 다녀가고 어느 순간 말간 햇빛이 고스란히 비출 때 반짝반짝 눈부신 꽃을 보았다.
물컵의 자화상 이만섭 조용한 기다림의 시간과 제자리를 지켜내는 단정한 신사 같은 맑은 물이 담긴 물컵을 생각한다. 고요를 초대하여 앉혀놓은 듯차분하고 해맑은 표정에서 이런 구석은 바쁜 일상을 빌려서라도 한 번쯤 지켜볼 만하여 나는 물가처럼 발목 적시듯 앉아 순수의 태도를 정갈하게 빚고 있는 물컵의 표정을 눈빛으로 스케치한다. 생활은 탁자 위에 어지러이 흩어져 있는데물컵만은 가지런하고 반듯하게 혼탁을 경계하며 자세의 의미심장을 부풀리며 앉아 있다 투명하고 명백한 현신을 미루어 보건대저 허리춤에서 가져온 것이 반가사유상이 아닌가 싶어 다가가려던 손길 잠시 거두어고요의 시간을 좀 더 지켜보는 것이다
새를 불러들이는 나무 이만섭 산 그림자 드러눕는 방향으로 새들이 날아가는 해 질 무렵 창유리의 역광처럼 비추어오는 깃털의 흰빛이 눈부시다. 공중을 건너온 새는뒤뜰에 감잎 지듯 자취 감추었다. 그새 어스름은 새를 단속하며 데려온 듯 날개 접는 소리조차 숨기고 어둠 저편으로 건너가는 텅 빈 마당 키 큰 구상나무 우듬지에 아직 저녁노을 붉은 온기 수상한데나무는 약속이라도 한 것일까, 날개의 수고로운 하룻길을감쪽같이 지워내는 온정이 갸륵하다.
저녁의 두부 이만섭 반듯하게 세워진 두부가 가까이 다가가면 무너져 내릴 듯 시선을 끌며 주의력을 환기하고 있다. 말랑한 선입견이 길어지면서기하학적인 구성을 더는 받쳐주지 못하고두부는 왠지 흘러내릴 것만 같다. 관심을 끌어들이는 중일까,편안한 차림으로도 맛을 단속하며 조금씩 팽창하는 두부 자늑자늑한 표정을 견디다가맑고 순결한 감정에 다가가듯 착한 손을 내민다. 예의 부드러운 촉감이매끈한 액체를 끼얹듯 훅- 하고 밀려드는데밑줄 그어진 고소함만큼이나몽글거리는 친절에 화답이라도 하듯 네모난 두부를 해체하여평면을 지켜낸 식탁이 안정을 찾은 듯 차분하다 저녁 이후에는 어떤 부드러움이 이어질까,생각하는 내내 마음이 두부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