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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섭의 詩 文學
물컵의 자화상 이만섭 조용한 기다림의 시간과 제자리를 지켜내는 단정한 신사 같은 맑은 물이 담긴 물컵을 생각한다. 고요를 초대하여 앉혀놓은 듯차분하고 해맑은 표정에서 이런 구석은 바쁜 일상을 빌려서라도 한 번쯤 지켜볼 만하여 나는 물가처럼 발목 적시듯 앉아 순수의 태도를 정갈하게 빚고 있는 물컵의 표정을 눈빛으로 스케치한다. 생활은 탁자 위에 어지러이 흩어져 있는데물컵만은 가지런하고 반듯하게 혼탁을 경계하며 자세의 의미심장을 부풀리며 앉아 있다 투명하고 명백한 현신을 미루어 보건대저 허리춤에서 가져온 것이 반가사유상이 아닌가 싶어 다가가려던 손길 잠시 거두어고요의 시간을 좀 더 지켜보는 것이다
새를 불러들이는 나무 이만섭 산 그림자 드러눕는 방향으로 새들이 날아가는 해 질 무렵 창유리의 역광처럼 비추어오는 깃털의 흰빛이 눈부시다. 공중을 건너온 새는뒤뜰에 감잎 지듯 자취 감추었다. 그새 어스름은 새를 단속하며 데려온 듯 날개 접는 소리조차 숨기고 어둠 저편으로 건너가는 텅 빈 마당 키 큰 구상나무 우듬지에 아직 저녁노을 붉은 온기 수상한데나무는 약속이라도 한 것일까, 날개의 수고로운 하룻길을감쪽같이 지워내는 온정이 갸륵하다.
저녁의 두부 이만섭 반듯하게 세워진 두부가 가까이 다가가면 무너져 내릴 듯 시선을 끌며 주의력을 환기하고 있다. 말랑한 선입견이 길어지면서기하학적인 구성을 더는 받쳐주지 못하고두부는 왠지 흘러내릴 것만 같다. 관심을 끌어들이는 중일까,편안한 차림으로도 맛을 단속하며 조금씩 팽창하는 두부 자늑자늑한 표정을 견디다가맑고 순결한 감정에 다가가듯 착한 손을 내민다. 예의 부드러운 촉감이매끈한 액체를 끼얹듯 훅- 하고 밀려드는데밑줄 그어진 고소함만큼이나몽글거리는 친절에 화답이라도 하듯 네모난 두부를 해체하여평면을 지켜낸 식탁이 안정을 찾은 듯 차분하다 저녁 이후에는 어떤 부드러움이 이어질까,생각하는 내내 마음이 두부 같다.
나뭇잎 서정 이만섭 나뭇잎이 꽃처럼 피어 흔들린다. 잎사귀 위에 잎사귀 나무를 드높이 끌어 올리며 나무의 날개가 되어 바람을 타고 허공을 날면 나무는 제자리에서도 공중 어딘가를 배회하다가 돌아온다. 새 떼처럼 즐비하게 나뭇가지에 앉아 깃털을 고르듯 나뭇잎이 푸름을 드높이는 여름 숲, 천 만개의 잎사귀들 단색조의 모자이크로 수놓아 말간 빛살에 얼굴을 내주며 그늘 바닥처럼 허공에 들어앉아 있다. 나무 아래를 걷는다. 나무의 등걸이 길을 내주는 사이로 푸른 이내 휘감아오며 생경한 기운이 옷자락을 잡아끄는데 나는 나뭇잎이 안내하는 손길인 줄 모르고 새로 생긴 길은 자꾸만 부풀어 올라 가슴께까지 차오른다. 소년이었을 때 이 길을 지나왔..
여름 저녁 머리맡에 선풍기를 앉혀놓고 이만섭 뭇 바람이 비켜 간 뒤 맨 나중에 불어오는 바람 소리로 선풍기가 돌고 있다. 부탁받은 손길처럼 풍차를 돌리듯 사위를 에도는 구음으로 초록 그늘을 퍼 날리고 있다 가운데 놓였어도 구석처럼구석에 놓였어도 가운데처럼 꾸물거리는 더위를 훠이 훠이 흐트러뜨리며 제 몸 내오는 소리는 붙박인 자리 붐비듯 어디선가 쏟아져나오는 여름날의 질문에 거침없이 대답한다. 돌이켜보면 허둥허둥 흘러온 자취인데끊임없이 뿜어내는 폐활량만으로도 이타적이어서저 소리 중심에 육탈한 눈부처 앉아 있다. 이 저녁에도 한 수레 가득 바람을 싣고 오는 숨 가뿐 바큇살의 드난살이는하루에도 팔만 육천사백 번뇌를 굴려내고도 거뜬히 제자리를 지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