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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섭의 詩 文學
가을 저녁에 이만섭 해 질 무렵 두부 장수의 종소리를 듣고 왔는지귀가하는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를 따라왔는지 어느 사이 당도한 저녁이 사방을 수묵 빛으로 색칠하고 있었다. 집들은 하나둘 불빛을 밝혀꽃나무를 가꾸듯 달그락거리는 소리를대문 밖 어둠 멀리 흘려보내며 지상에서 가장 오래된 기다림의 손길로하룻길에서 흩어져 있던 것들을 불러들이는 중이었다. 거리감도 높낮이도 사라진 허공의 기슭에생활의 등짐을 기대인 나는 날 저문 옛 마을에서 방물장수가봇짐을 내려놓을 하룻밤의 사랑舍廊을 기웃거리며고샅을 헤매던 심정인데 둥근달이 어둠을 비추며 환하게 떠올랐다.
靑天日記 이만섭 푸른 날개의 새가 공중을 날고 있다. 새는 고유한 꿈을 펼쳐 보이듯 하늘 아득한 데까지날아갔다가 돌아오는 일상을 즐기기도 하는데오늘은 가을날이 띄운 비행선처럼산하를 굽어보는 단색조의 날갯짓이 명징하다. 새에게도 우리가 모르는 서정이 있어궂은날에는 호숫가의 갈대처럼 물낯에 어린 표정거두어들이고 시간이 지나가길 기다린다. 그런 저녁은 텅 빈 공중을 어둠에 건네주고하늘 가장자리에 들어앉은 흰빛 정자로총총히 돌아가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새날이 밝아오면어느 사이 창공을 훨훨 독차지한다. 나는 가끔 저 푸른 날개가한 무리의 새 떼들을 몰고 가는 광경을 본다. 어미 곁에서 파닥거리는 유조의 날갯짓처럼비상으로부터 생을 체득하는 공중은새 떼들의 오랜 거처라는..
모래꽃 이만섭 백사장을 건너간 발자국들 꿈의 허물처럼 쌓인 어지러운 자취는 간밤에 무슨 꿈을 꾸었는지조차 알 길 없는데 모래는 오직 밟히기 위해 존재한다는 생각이 지나갔다. 저토록 붐비어 닳고 닳은 몸뚱어리에 비바람 다녀가고 어느 순간 말간 햇빛이 고스란히 비출 때 반짝반짝 눈부신 꽃이 피었다.
물컵의 자화상 이만섭 조용한 기다림의 시간과 제자리를 지켜내는 단정한 신사 같은 맑은 물이 담긴 물컵을 생각한다. 고요를 초대하여 앉혀놓은 듯차분하고 해맑은 표정에서 이런 구석은 바쁜 일상을 빌려서라도 한 번쯤 지켜볼 만하여 나는 물가처럼 발목 적시듯 앉아 순수의 태도를 정갈하게 빚고 있는 물컵의 표정을 눈빛으로 스케치한다. 생활은 탁자 위에 어지러이 흩어져 있는데물컵만은 가지런하고 반듯하게 혼탁을 경계하며 자세의 의미심장을 부풀리며 앉아 있다 투명하고 명백한 현신을 미루어 보건대저 허리춤에서 가져온 것이 반가사유상이 아닌가 싶어 다가가려던 손길 잠시 거두어고요의 시간을 좀 더 지켜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