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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섭의 詩 文學
화장지 이만섭 새신부는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하얀 드레스 위에 피어난 부케 같은 얼굴을거울에 비춰 보며쳇바퀴 속 다람쥐를 연상하다가삶이 셋방살이 같다는 생각에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허겁지겁 찾아간 곳은 알전구 희미한몽상의 방이었다. 기다렸다는 듯 울기 좋은 방은하얀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주었다.눈물이 위안이 되는 것은 눈물을닦는 손이 있기 때문인 것을 처음 알았다.쪼그라져서 볼품없던 생각은 비행선처럼 부풀어져머리통 위를 둥둥 떠다니기 시작하는데하나씩 불러오는 미제의 기억들이발광체로 빛을 뿜어내기 시작하는 것이다.이 몽상의 끝은 어디일까,처녀 적 대청마루에 앉아 맷돌을 갈다가 떨어진 콩알또르르 굴러 마루판 틈새로 들어간 사연은지금쯤은 어떻게 되었을까,한 생명체가 굴..
춘몽 이만섭 눈떠보니 꿈이다.잠든 적 없는데 눈 한번 감았다 뜬 사이숨결을 박차고 나온 듯 온기가 고스란하다.꽃핀 자리마다 물들어놓은 연둣빛 연두에 우는 새들물보라 휘날리는 골짜기의 폭포수는약동하는 산색의 심장 소리청명의 옷자락에 오색 띠 두르고 춤추던 선녀들 돌아간 물푸레나무 아래 아리따움의 여운 보자기처럼 펴 놓고 계절을 예찬하듯 일월에 경배를 올린다.가파른 산록에도 새로 난 길 있어나무들 우듬지마다 옷깃 여미듯 고개 내밀어 들릴 듯 말들 속삭이는 명지바람에 귀를 내주는데점점 밝아오며 환해지는 것들어디선가 건너오는 세안하는 소리투명을 입어선지 맑은 낯은 보이지 않고 뽀드득 움켜쥔 물 자락이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가이슬 같은 은빛 날개를 반짝인다.순간마다 초점을 맞추..
선글라스 이만섭 나도 알 수 없는 배후 세력에 그림자처럼 따라붙는 내가 있어 애매해진 나는 세상을 보는 게 아니다 살피는 거다. 햇빛 공화국에 입국한 그늘의 신분처럼 외따로운 표정으로 바람이 불어오지 않아도 서늘한 뒤통수는 누군가 쏘아보는 듯 목적은 따로 있는데 도드라진 입장의 차이는 가까이에서도 거리감을 재듯 이어폰이라도 끼면 신분이 드러날까 봐 그렇지는 못하고 수상쩍은 대로 사람들 사이를 지나서 지하 계단에 들면서 더는 필요 없게 된 신분도 배후 세력도 고스란히 떠안고 빛바랜 혐의점에 갇혀버린 채 스크린도어 앞에 선 나는 햇빛이 보낸 밀사처럼 그늘 속의 나를 발견하지 못하고
어떤 근황 이만섭 보채는 아기 등 토닥거리듯 대지를 쓰다듬는 봄볕 데크 위에도, 우리집 강아지 동공 지키려 안간힘을 쓰다가 나른해진 눈꺼풀을 포기한 채 네 발 쭉 뻗고 말았습니다. 참새들 나무와 나무 사이 오가고요. 바람도 이따금 강아지 엉덩이 털을 훅, 하고 입김처럼 불며 지나가는데 무슨 일인가 싶어 강아지 벌떡 일어났다가 다시 돌아눕습니다. 폭신한 방석의 둘레만큼 고스란하게 뭉쳐진 한낮이고요.
벚꽃들 이만섭 이타적인 봄이다 시작은 꿈을 위해서라지만 깨어보니 강냉이 튀밥처럼 우르르 쏟아져 나왔으니 나무에도 심장이 있어 가늘고 섬세한 손으로 내 안에 창을 열어젖히며 도대체 어쩌자고 꽃들은 창밖에서 저토록 함함하게 피어 난리다 몰려가는 사람들 틈에 끼어 천변에 나가볼까 하다가 티브이가 가까이 끌어 당겨놓은 벚꽃들 풍경을 독차지하고서 하얀 사기그릇 접시 펼쳐놓은 듯 동글동글하게 이목구비조차 지워버린 함박웃음이다 청명을 기리는 하늘은 한 점 흰 구름조차 발을 못 붙이게 해놓고 소녀들의 하얀 치아처럼 웃고 있는 꽃잎들은 설렘이 분출하는 두근대는 심장 소리 그래 너희들 세상이다 청춘의 소풍이다 아직은 알 수 없겠지만 돌이켜보면 눈물 나는 순간이다 그립다는 말의 긴 모가지도 이쯤에서 멈춰놓고 울컥울컥 쏟아내..
수선화 이만섭 내 마음에 小曲 하나 구근식물처럼 흙 속에 갇혀 있다가 봄이 오면 깨어 나와 노래하지요 허공의 귀는 밝기도 해서 버드나무를 스치는 바람에 소식 전하고 파란 호수로 들어앉은 춘삼월 하늘에도 알려 소리의 울림이 피워낸 물결 저편 아지랑이처럼 손짓하는 어여쁜 仙子처럼 아름다움이 돌아오는 연두의 시간 나의 소곡도 꽃처럼 피어나지요.
햇봄 이만섭 간절기의 바람에 씻긴 민낯이 거울 앞에서 더 투명해 보이는 아침이다 무수한 손짓들 흔들며 나올 듯 고물고물 약동하는 거울의 눈동자 이리저리 갈마드는 궁리에 이끌려 다다른 창가 창유리의 망막을 한 꺼풀 더 걷어낸 듯 날빛 투명한 바깥은 무언가 발견하기 좋은 날 풀밭을 기는 뱀처럼 실내를 빠져나온다 금가루 같이 쏟아지는 햇빛을 어디에 써야 좋을까 누군가를 부르고 싶다 나 여기 있다며 외치고 싶다 서둘러 지나는 길모퉁이 샛노랗게 휘늘어진 개나리꽃에 붙들려 해찰하는데 꽃그늘 아래 반짝이는 푸른 눈빛 밀회를 들킨 고양이가 재빠르게 달아난 쪽으로 언덕 하나가 우뚝 서서 차가운 몸을 데우고 있다 저 햇빛 봉우리에 당도하면 봄바람이랑 꽃바람이랑 사귈 수 있을까 괜스레 마음 설레는 아침나절
북향집 이만섭 개울 건너 북향집엔 누가 살까, 마주 보고 있어도 돌아앉아 있는 듯 종일토록 주인은 보이지 않고 그늘에 기대인 높은 지붕이 교목들과 키재기를 하는데 흐린 날 나무 끝에 날아온 까마귀가 안부를 묻듯 기웃거리면 돌담에 핀 이끼가 장막을 친다. 낮 동안 등걸이 따뜻해서 게으름을 피우는 것일까, 저녁 해 넘겨 먹은 서쪽이 지워질 무렵 밤하늘에 찍히는 은빛 소수점들 어둠 속 창문이 재빠르게 들어앉힌다. 아득해서 보이지 않는 것들이 별빛에 얹혀오면 날빛이 읽어주는 풍경에 관한 것보다는 그늘에 가려진 소소하고 사적인 것들이 궁금해진다. 겨울 자리에서 깨어나면 올봄에 정원은 어떤 꽃이 깃발을 먼저 꽂을까, 바람에 날아다니다가 돌부리에 걸려 파닥거리는 찢긴 비닐봉지의 황량한 몸짓조차도 그 정신이 깃든 강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