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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섭의 詩 文學

산까치 /이만섭 본문

시 6

산까치 /이만섭

이만섭 2024. 9. 16. 08:58

 

산까치

 

 

                     이만섭

 

 

 

  물 깊은 호수 같은 침묵은 딱히 읽어낼 수 없는 표정으로 제각각인 나무들 틈새에 몸을 들여놓는데 숲은 미동도 하지 않으면서 내심은 반기는 방식인 듯싶었다. 보이지 않는 손이 허리를 감싸 안아 자꾸만 안으로 끌어당기는데 혼자인데도 나무들 사이 줄을 지어 들어가듯 다독다독 걸으며 마음을 닦아내는 듯한 청량감에 몇 번인가 심호흡으로 어깨를 들어 올렸다. 오랜만에 폐활량을 재며 몸을 읽어내고 있었다. 내가 나를 읽는 게 어쩌면 처음일지도 몰라, 먼지 쌓인 책장을 털어내면서 종이의 본향에서 문명에 찌든 마음을 비춰본다는 생각까지 이르게 되었다. 정화라는 말이 겹쳐왔다. 씻고 씻다 보면 비대해진 몸도 닳아 작아질 수 있을까, 숲의 깊이만큼 생각이 이르렀을 때 유난히 큰 나무 한 그루가 중심을 알리는 듯 버티고 서있었다. 우러러보는 하늘 가지에 파란 종이에 오려 붙인 표정으로 새 한 마리가 앉아 있었다. 정화된 마음의 자리에 꾹 박힌 채 미동조차 하지 않은 새는 예기치 않게 외로움의 무게를 뚝 떨어뜨리며 출입금지라는 푯말을 발걸음 앞에 세었다. 나무가 꼭 그렇다. 나무는 외롭지 않고 새가 그리 보였다. 나를 안았던 팔들이 일시에 풀리며 숲이 떠난 자리에 우뚝 솟아난 외로움과 마주하는데 그만 인기척을 따돌리듯 새는 더 깊은 숲으로 날아가 버린다. 외로움을 지켜주는 숲이 있어 내색할 수 없는 외로움이 있어 숲은 깊은 곳을 향하고 나는 새가 날아간 곳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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