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섭의 詩 文學
신발을 버리며 본문
신발을 버리며
이만섭
낡은 신발을 내놓는다.
오랫동안 신고 오랫동안 신지 않아서
닳고 곰팡 난 노구인데 서로의 짝이
흩어질까 봐 봉지에 담아
밑창이 헐벗도록 나를 끌고 다녔어도
혼자는 한 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는 처지여서
그동안의 노고를 상기하면서
처음 살 때 두 손에 올려 굽어보던 것처럼
닳고 닳은 바닥에 지상의 마지막 빛을 쏘여주듯
두 손 위에서 잠시
꽃이 지는 시간을 함께 보내고 있다.
인력을 거들고 인력이 다한 자리
질척이는 바닥에 디딤돌 같은 수고로움이 얹혀 있어
미루고 미루다가 내색 그대로
마뜩함이 이리도 곤궁한 까닭에
눈을 떼어 생각을 걷어내듯
돌아보면 길 아득하여 마음에 향을 피워놓고
우두커니 신발 없이 서 있다.
'시 6'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산까치 /이만섭 (2) | 2024.09.16 |
---|---|
연못 가에서/이만섭 (0) | 2024.09.14 |
토끼가 다녀갔다 /이만섭 (0) | 2024.07.31 |
사과는 얼굴로 말한다 /이만섭 (0) | 2024.07.14 |
슬픔의 더부살이 /이만섭 (0) | 2024.06.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