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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섭의 詩 文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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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6

어느 저녁 슬하에 돌을 모셔놓고 /이만섭

이만섭 2024. 5. 27. 17:58

 

 

 

어느 저녁 슬하에 돌을 모셔놓고

 

 

                   이만섭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문안이라면 문안이라고 하겠으나

슬하에 놓여도 무엇을 여쭙는 마음의 선반 같아

공손히 손 내밀면

태곳적에 닿는 느낌이 온다.

 

한 번도 외로운 적 없는

한 번도 감정을 토로한 적 없는

똘똘 뭉친 자존감에 대하여

 

기록에 의하면 이 형상은

삼천대계에서 가져왔다고 하나,

천만년 전에 붉은 손이 다시 써서 밀봉해놓은

문장이란 설도 있다.

 

높이 솟은 산과 기다랗게 흐르는 강물이

연혁에 있어 다르지 않겠으나

보지 않고 듣지 않는 눈과 귀를 밑줄로 삼는

태연자약이 문장일 수 있는가,

 

어떤 침묵이 경전으로 읽힌다면

무게의 깊이에 고개 숙여야 하리,

 

말은 생각의 설명이어서

그것을 뿌리치고 질주하는 말이 있다면

돌에 묶인 끈을 풀려고 애쓰는 마음과 같아

말의 가벼움을 침묵으로 다스리는

표정을 받드는 저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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