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ice
Recent Posts
Recent Comments
Link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Tags
more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이만섭의 詩 文學

숲 /수직의 깊이 /그대의 연안(沿岸0에서 /염소의 뿔 /사랑의 부재 /울음의 고리 본문

시 1

숲 /수직의 깊이 /그대의 연안(沿岸0에서 /염소의 뿔 /사랑의 부재 /울음의 고리

이만섭 2011. 11. 16. 23:33

 

 

 

 

 

 

 

/이만섭

 

 

 

새를 위해서 새의 발톱을 위해서 새의 노래를 위해서 숲은 어미가 되었다, 그러니까 닭이 병아리를 부화해놓고 이것들을 모퉁이 채마전에 풀어놓았다가 주인이 쫓아오자 혼비백산하여 달아날 때 담장 밑에서 기다렸다는 듯이 풍선처럼 부풀린 깃털 속으로 새끼들을 거둬들이듯. 바람이 찾아와 떼를 쓸 제 품 안에서 목석 같은 화음으로 밤새워 노래해주다가 새벽녘에서야 배웅하고 돌아오면 몸을 에우던 밤안개는 그제사 불면을 위로하듯 적막을 들여놓고 있었다 언제라도 귀 열어 새의 노랫소리 들어주고 가슴 열어 등걸에 기대어 우는 바람의 뜻을 받아주며 숲은 유혹도 미혹도 다 품에서 녹여내던 것이었다

 

 

 

 

 

 

 

 

 

 

 

수직의 깊이 /이만섭

 

 

 

서점에서 책을 고르다가 책을 빼들고

책꽂이의 틈새에 잠시 나를 세운다

책들은 나의 가장자리에서

도시의 건물들처럼 높이를 재는데

나는 어느덧 건물 사이를 걷고 있다

지금까지 나는 왜 이 길을 걸었던 것일까,

아직도 걷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골목바람이 머리카락을 띄우는데 고갤 드니

눈빛의 끝자락에 마천루가 아스라하다

수직은 언제나 그렇게 있다

내력처럼, 체질처럼, 꼼짝 않고

언제나 공간에 기대어 자기중심적 표식으로

높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당당하다

몸을 들여놓았던 자리에 책을 다시 꽂으니

책들이 건물처럼 우뚝 선다

모든 수직은 껍데기에 불과한지도 모른다

책의 안쪽을 치장한 책표지처럼

물 또한 높이를 재지만 그 바닥을 깊이라 할 것인가,

표지와 목차를 지나 문장들 사이

비장해 놓은 뜻을 얻을 때

책은 비로소 깊이가 있다 할 것이다

 

 

 

 

 

 

 

 

그대의 연안(沿岸)에서 /이만섭

 

 

 

바다라고 말할 수 없는

뭍이라고 말할 수 없는

내 마음의 경계선에서

그대는 수평이 되었다가 지평이 되었다가

한사코 그렇게 있다

 

썰물이 빠져나간 뒤

그곳 후미진 뻘밭으로 나가

나는 오늘도 칠게와 논다

 

나의 만보와 칠게의 횡보 사이

발자국은 나를 쫓아오고

달아나다가 가슴 부푼 능선에서 미끄러져

갯벌의 물골에 처박히면

밀물은 아코디언처럼 몸을 비틀며 춤추고

 

저녁달이 뜰 때

나는 칠게에 물린 손을 움켜쥐고

그대의 추억에서 돌아온다

 

 

 

 

 

 

 

 

염소의 뿔 /이만섭

 

 

 

말뚝과 풀밭 사이에서 

염소가 자란다 뿔이 자란다

노란 눈동자는 미루나무가 서 있는 언덕을 원했건만

절벽 끝으로 내몰아 뿔만 키웠다

염소가 내게 각을 세우던 그 시절도

뿔이 아니었드라면 염소는 곧잘 자존심을 구겼을 테지

팽팽한 줄다리기 끝에 툭- 하고 끊어지면  그것은

목줄이 아니라 화해였다

우리 사이 평상심이란 긴장을 갖는 일이었다

그 후, 나도 염소도 뿔을 까맣게 잊고

가끔은 자유를 선점하기 위해 티격태격 시비를 가렸지만

뿔은 사사롭지 않을수록 더욱 자라

마침내 관이 되었고

염소의 자유도 그만큼 험난했다

그러나 뿔은 끝내 생을 방어해주지 못했다

뿔이 생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염소는

뿔의 계단을 내려와야 했다

염소가 뿔을 지녔던 것은 슬픔의 잉태였다

나도 내 안의 뿔이 부끄러웠다

 

 

 

 

 

 

 

 

 

 

사랑의 부재 / 이만섭

 

 

 

우리는 늘 그런다

사랑할 시간이 많은 듯이

그러다가 사랑은 가고,

 

시간의 먼 기점까지 가서

누구도 사랑을 기다리다가 오는 이 없고,

그리움이라고 말하는 것은

창의 이편에서

우두커니 마음 젖는 것

 

사랑이라고 아는 것은

씀씀이 얻을 수 있는 양

그뿐, 어정어정 거드름을 피우다가

세월에 휘둘려

상처나 후회에 마음 내주고

 

우리는 늘 그런다

사랑할 시간이 많은 듯이

앞만 보고 시간을 쫓는 것이

우리의 쓸쓸한 핑곗거리다

 

 

 

 

 

 

 

 

 

 

울음의 고리 /이만섭

 

 

 

누가 울면 아프다

그는 슬퍼서 울지만 내 귀는 아파서 슬프다

 

설핏,

눈두덩이 보이고

앞자락이 보이고

눈물끼리 번져간 얼룩은

발등까지 덮고 있다

 

티브이 속 여인도

무릎을 꿇고 정중히 손길을 내민다

울음은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며

소문처럼 변주한다

 

방울방울 떨어져 생긴 흔적은

앙금처럼 깊이로 내렸지만

증발해버린 몇몇 눈물방울들은

착시현상인줄 알면서도 지우지 못하고

한 번 들어선 슬픔은 하염없다

 

상갓집에서 들리는 울음이 유난히 슬픈 까닭은

가슴 속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세속의 것이 아닌 샘물 같은 울음은

언제라도 귀를 꿰어 간다

 

 

 

 

 

 

'시 1'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비의 접근성 /이만섭  (0) 2011.11.19
탑(塔) /이만섭  (0) 2011.11.17
구름의 수사법 /이만섭  (0) 2011.11.11
둥근 저녁이 어둠 속에서 /이만섭  (0) 2011.11.09
새점 /이만섭  (0) 2011.1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