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섭의 詩 文學
겨울 /이만섭 본문
겨울
이만섭
쇼윈도우에 걸린 외투를 기웃거리는데
투명 유리에 비친 얼굴이 말을 걸어온다.
손님! 이것은 팔린 상품입니다.
이번 겨울은 더 새로워 주문이 밀리기 전에
서둘러 예약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얼굴은 묻지도 않은 말을 걸어온다.
사실일지도 모른다.
겨울은 매번 길었고
몸도 마음도 깊이 파묻혀 들어
이루어놓은 것이란
상념의 페이지만 책갈피처럼 두터워졌다.
창에 햇빛이 들자 주인은
외투를 벗겨내고 얇은 가운을 입히는데.
투명 유리의 얼굴이 비닐처럼 펄럭이며 다시 말을 걸어온다.
손님! 이것은 보시다시피 신상입니다.
겨울은 아무래도 삼한사온에 대비하는 게 좋을 겁니다.
실내의 마네킹이 추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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