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섭의 詩 文學
의자를 물려놓다 /이만섭 본문
의자를 물려놓다
이만섭
의자 위에 꽃이 있다.
누가 가져다 놓았는지 꽃은 선물의 입처럼
꼬리를 귀에 걸고 들뜬 표정으로 놓여 있다. 그사이
열 번의 축하 메시지가 도착하고 그 답례로
향기를 사방에 퍼트리며
오늘 저녁은 제가 쏘겠습니다. 자리에 남아주세요.
그러나 그것은 의자의 말이었다.
사흘에서 한 열흘쯤 지나 꽃은 시들어도 의자는 남을 테니
입석은 모두 귀를 기울여야 했다.
저녁이 와도 의자는 의자였다. 유산계급의 총아처럼
파티가 끝나고 모두 돌아간 뒤
몽롱해진 눈으로 의자를 돌아보았을 때
살찐 흰 종아리가 의자의 네 발목의 호위를 받으며 앉아 있었다.
거기 누구시더라, 혹시 당신은 아무개 씨가 아니오?
그쪽이 호명하는 나는 오래전 의자를 옮겨놓은 사람
그는 거듭 존재감을 확인하려 들었다.
그리곤 의자를 보좌하는 말이
환영처럼 살찐 흰 종아리와 함께 사라졌다.
나는 재빠르게 의자를 저만치 구석에 물려놓았다.
어둠속 파닥거리는 푸른 불빛처럼
'시 2' 카테고리의 다른 글
너무 많은 비 /이만섭 (0) | 2017.07.26 |
---|---|
獨白 /이만섭 (0) | 2017.07.19 |
몽돌 /이만섭 (0) | 2017.07.05 |
현기증 /이만섭 (0) | 2017.07.01 |
커튼이 보여줄 수 있는 것은 /이만섭 (0) | 2017.06.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