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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섭의 詩 文學

의자를 물려놓다 /이만섭 본문

시 2

의자를 물려놓다 /이만섭

이만섭 2017. 7. 5. 21:56

 

 

의자를 물려놓다

 

 

                이만섭

 

 

 

의자 위에 꽃이 있다.

누가 가져다 놓았는지 꽃은 선물의 입처럼

꼬리를 귀에 걸고 들뜬 표정으로 놓여 있다. 그사이

열 번의 축하 메시지가 도착하고 그 답례로

향기를 사방에 퍼트리며

오늘 저녁은 제가 쏘겠습니다. 자리에 남아주세요.

그러나 그것은 의자의 말이었다.

사흘에서 한 열흘쯤 지나 꽃은 시들어도 의자는 남을 테니

입석은 모두 귀를 기울여야 했다.

저녁이 와도 의자는 의자였다. 유산계급의 총아처럼

파티가 끝나고 모두 돌아간 뒤

몽롱해진 눈으로 의자를 돌아보았을 때

살찐 흰 종아리가 의자의 네 발목의 호위를 받으며 앉아 있었.

거기 누구시더라, 혹시 당신은 아무개 씨가 아니오?

그쪽이 호명하는 나는 오래전 의자를 옮겨놓은 사람

그는 거듭 존재감을 확인하려 들었다.

그리곤 의자를 보좌하는 말이

환영처럼 살찐 흰 종아리와 함께 사라졌다.

나는 재빠르게 의자를 저만치 구석에 물려놓았다.

어둠속 파닥거리는 푸른 불빛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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